삼성전기 · 기업 해부 01
성장시장을 맞히는 것만으로는 전략이 완성되지 않는다. 시장의 이름은 바뀌어도 기술이 실제 제품이 되는 순간에는 성능과 신뢰성, 양산을 가로막는 제약이 생긴다. 이 글에서 ‘다음 병목’은 바로 그 물리적 제약을 뜻한다.
삼성전기는 인공지능(AI) 서버와 자동차용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휴머노이드용 카메라 공급도 확대할 계획이다. 제품은 달라도 맡는 일은 닮았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더 많은 신호를 연결하고, 주변을 정확히 감지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글의 핵심은 이것이다. 성장시장을 고르는 능력보다, 시장이 바뀌어도 다음 병목을 풀 수 있는 전문성을 조직에 남기는 능력이 더 오래갈 수 있다. 삼성전기의 제품과 실적, 공개된 조직 운영을 한 줄로 놓고 이 가설을 살펴본다.
시장이 달라도 물리적 제약은 되풀이된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서는 연산량이 커질수록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고집적 칩의 신호를 빠르게 연결해야 한다. AI가 자동차나 휴머노이드처럼 현실에서 움직이는 기기에 들어가면 주변을 정확히 읽는 감지 능력도 중요해진다. 시장마다 핵심 병목의 조합은 다르다.
삼성전기의 주요 제품은 이 세 가지 제약에 대응한다.
-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전원 라인의 노이즈를 제거하고 전압 변동을 억제한다.
- 패키지기판은 반도체와 메인보드 사이에서 전기 신호를 전달하고 반도체를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한다.
- 카메라 모듈은 스마트폰과 자동차 같은 기기가 주변 영상을 획득하게 한다.

전력과 연결, 감지는 삼성전기의 공식 사업 분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제품이 해결하는 문제를 비교하기 위한 이 글의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삼성전기의 제품군은 한 성장시장에 건 베팅이라기보다 여러 시장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제약의 조합에 대응하는 포트폴리오로 읽힌다.
실적은 현재 수요가 어디에 붙는지 보여준다
삼성전기는 2026년 2분기에 매출 3조 4,572억 원, 영업이익 4,404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4%, 영업이익은 107% 늘었다. 회사는 AI 서버와 네트워크 등 데이터센터용 MLCC, 자동차용 MLCC, 고부가 반도체 기판,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자율주행 관련 전장부품의 공급 확대를 성장 요인으로 들었다.
이 수치만으로 병목 중심의 포트폴리오나 고부가 제품 전환의 효과를 증명할 수는 없다. 환율과 가격, 비용을 비롯한 여러 변수가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회사가 설명한 성장 요인이 AI·데이터센터·전장용 부품에 집중됐다는 점은 현재 수요가 어느 제약에 붙고 있는지 보여주는 보조 신호다.

약 1조 5,000억 원 규모의 실리콘 캐패시터 공급 계약도 전력 안정화라는 병목이 실제 공급 기회로 이어진 사례다. 계약 기간은 2027년 1월 1일부터 2028년 12월 31일까지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AI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 안에서 전력 공급을 안정화한다.
더 중요한 대목은 회사가 신규 사업의 기반을 기존 MLCC와 패키지기판 사업에서 쌓은 초미세 공정 역량이라고 설명했다는 점이다. 제품은 바뀌었지만, 기존 사업에서 쌓은 공정 역량을 새로운 전력 병목에 적용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공급 계약 하나가 지속적인 우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병목이 있다고 가치가 저절로 공급자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기술 차별화와 수율, 인증, 공급능력을 반복해서 증명해야 우위가 지속될 수 있다. 병목은 해자의 후보일 뿐이고, 반복해서 푸는 능력이 해자를 만들 수 있다.
전문성 전략을 평가와 대화로 번역하다
다음 질문은 제품이 아니라 조직으로 향한다. 새로운 병목을 발견하고 기술 문제로 바꾸어 양산 수준에서 해결하는 능력은 어떻게 축적되는가.
2026년 8월 20일 제24회 가인지경영세미나에서 삼성전기 인사제도 담당 오림환 프로는 인사제도 개편의 출발점을 경영진의 사업 인식으로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전방산업이 AI에서 우주산업이나 다른 전자산업으로 바뀌더라도 필요한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사업의 기반으로 보았다. 동시에 소재·부품·장비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중국 기업의 추격을 중요한 위험으로 인식했다. 대응 방향은 직급과 나이가 아니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하는 문화였다.
이 대목에서 사업전략과 인사제도가 연결된다. 제품이 향하는 시장은 바뀔 수 있지만 새로운 문제를 풀 전문성은 사람과 조직 안에 남아야 한다. 오림환 프로는 전문성을 강조하는 문화와 구성원에게 실제 행동을 가르치는 제도가 서로 어긋나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상위등급의 배분율이 정해진 상대평가보다, 개인이 연초에 세운 목표와 달성 수준을 보는 절대평가가 이 방향에 더 맞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평가 도입이 곧 전문성 문화의 정착을 뜻하지는 않는다. 구성원이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세우거나 리더가 상위 등급을 관대하게 부여하면 제도의 의도가 무너질 수 있다. 발표에서 설명한 핵심은 제도 변경보다 이를 작동시키는 운영이었다.
- 구성원이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행 과정을 점검하도록 정기적인 일대일 대화(1on1)를 운영한다.
- 리더의 역할을 연말 평가자에 한정하지 않고 구성원의 성과와 성장을 돕는 코치로 확장한다.
- 목표와 평가 기준을 미리 공유하고, 리더들이 평가 근거를 함께 검토해 기준의 차이를 조율한다.
이 방향은 삼성전기가 공개한 임직원 정책과 2025-2026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회사는 모든 임직원이 개인별 연간 목표를 수립하고, 중간점검과 일대일 피드백을 거쳐 평가받는다고 밝힌다. 2025년 절대평가 도입에 맞춰 그룹장과 파트리더에게 연 2회 성과관리 교육을 제공했으며, 일대일 대화 가이드를 배포하고 코칭·피드백 교육을 시행했다고 설명한다. 온라인 코칭 세션과 연계한 현장 지원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힌다.

여기서는 인과의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절대평가와 일대일 대화, 리더 교육이 2026년 2분기 실적이나 공급 계약을 만들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오림환 프로도 질의응답에서 인사제도와 매출·영업이익의 직접적인 영향을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개 자료와 세미나 발표로 확인되는 사실은 제품·사업의 방향과 평가·코칭 운영이다. 두 방향이 전문성 축적이라는 한 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 글의 해석이며, 그 정렬이 사업성과를 만든다는 주장은 앞으로 검증해야 할 가설이다.
다음 병목을 푸는 능력이 남는다
삼성전기 사례에서는 두 개의 지도를 함께 볼 수 있다. 하나는 시장이 바뀔 때 새로 나타나는 제약을 읽는 병목 지도다. 다른 하나는 그 문제를 풀 전문성을 사람과 조직에 남기는 운영 지도다. 첫 번째 지도만 있으면 기회를 발견하고도 실행하지 못한다. 두 번째 지도만 있으면 무엇을 위해 전문성을 쌓는지 흐려진다.
경영자에게 남는 질문은 세 가지다.
- 우리가 좇는 시장에서 되풀이되거나 새로 생기는 제약은 무엇인가.
- 우리 조직이 그 제약을 양산 수준에서 풀 수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 목표 설정과 평가, 리더 육성 방식은 그 전문성을 조직에 축적하고 있는가.
이 사례가 남기는 전략적 결론은 단순하다. 성장시장은 바뀐다. 다음 병목을 풀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일은 그 변화보다 오래갈 수 있다.